나무
안도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나무가 버티는 것은
귀뺨을 폭풍한테 얻어맞으면서
이리저리 머리채를 잡힌 채 전전긍긍하면서도
기어이, 버티는 것은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것을
이제 막 꼼지락꼼지락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훗날 이 세상을 나무의 퍼덕거림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 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며
나무는 버틴다
나무라고 왜 가지가지 신경통을 모르겠으며
잎사귀마다 서러움으로 울컥일 때가 왜 없었겠는가
죽어버릴 테야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휘저어 보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트럭을 탄 벌목꾼들이 당도하기 전에
그냥, 푹 고꾸라져도 좋을 것을
죽은 듯이 쓰러져 이미 몸 한쪽이 썩어가고 있다는 듯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듯이 코를 처박고
엎드려 있어도 될 것을 나무는 한사코 서서, 나무는 버틴다
체제에 맞서 제일 잘 버티는 놈이
제일 먼저 눈밖에 나는 것,
그리하여 나무는
결국은 전생애를 톱날의 아구 같은 이빨에 맡기고 마는데,
여기서 나무의 생은 끝장났다네, 저도 별 수 없지, 하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끌려가면서도 나무는 버틴다.
버텼기 때문에 나무는 저를 싣고 가는 트럭보다 길다
제재소에서 토막 토막으로 잘리면서, 나무는
뎅구르르르 나뒹굴며
이제 신의주까지 기차를 나르는
버팀목이 될거야, 한다.
나무는 버틴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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