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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8

[안도현] 우리 동네 오리온 공장

우리 동네 오리온 공장 안 도 현 우리 동네 오리온 공장은 내 추억 속 별 총총 어머니 졸라 사먹던 동양제과 비스켓 만드는 곳 흰 빵모자 쓴 어린 노동자들 파업중이다 요즘은 며칠째 과자 굽는 냄새 나지 않고 노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장에 맞서 싸운다 어깨에 어깨를 걸고 울며 부르는 노래가 빗줄기되어 동네를 적신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나도 학교에서 쫒겨난 선생 가르치고 싶다 오늘은 우리집 아이에게 오리온 과자 한봉지 사주고 싶다 저 언니들이 붉은 머리띠를 묶는 저 손들이 바로 맛있는 과자며 빵을 만드는 손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장 깨끗한 손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파업, 집회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언론과 정권의 탄압이 그 원인이 있겠지만 그래도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안도현] 민석이 백일 지나 밖에 안고 나가니

민석이 백일 지나 밖에 안고 나가니 안 도 현 민석이 백일 지나 밖에 안고 나가니 동네 어르신네들 하시는 말씀 있다 그 놈 참 잘도 생겼다 장군감이로구나 얼럴 얼럴러 깍꿍 그놈 참 미끈하게도 생겼다 대통령감이로구나 볼기짝 한대 철썩 그런데 그런 덕담도 어찌 내 귀에는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민석아 나는 네가 먼 훗날 제발 장군이나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국을 지키는 일보다 정권의 들러리나 서는 장군이라면 부하에겐 늑대가 되고 상관에겐 쥐새끼가 되는 장군이라면 하늘의 별보다 어깨 위의 별에 눈먼 장군이라면 아직도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장군이라면 어느 땐가 때가 오면 혼란을 틈타 군복을 벗어던지고 싶어하는 장군이라면 학살을 하고도 피 묻은 손을 태연히 감추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최루탄 없으면 단..

[안도현] 이 세상에 아이들이 없다면

이 세상에 아이들이 없다면 안 도 현 어른들도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없으므로 교육도 없을 것이다 교육이 없으므로 교과서도 없을 것이다 교과서가 없으므로 시험도 없을 것이다 시험이 없으므로 대학교도 없을 것이다 대학교가 없으므로 고등학교도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가 없으므로 중학교도 없을 것이다 중학교가 없으므로 국민학교도 없을 것이다 국민학교가 없으므로 운동장도 없을 것이다 운동장이 없으므로 미끄럼틀도 없을 것이다 미끄럼틀을 타고 매일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부신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안도현] 나무

나무 안도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나무가 버티는 것은 귀뺨을 폭풍한테 얻어맞으면서 이리저리 머리채를 잡힌 채 전전긍긍하면서도 기어이, 버티는 것은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것을 이제 막 꼼지락꼼지락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훗날 이 세상을 나무의 퍼덕거림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 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며 나무는 버틴다 나무라고 왜 가지가지 신경통을 모르겠으며 잎사귀마다 서러움으로 울컥일 때가 왜 없었겠는가 죽어버릴 테야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휘저어 보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트럭을 탄 벌목꾼들이 당도하기 전에 그냥, 푹 고꾸라져도..

[안도현]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안도현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후광과 거산의 싸움에서 내가 지지했던 후광의 패배가 아니라 입시비리며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이 아니라 대형 참사의 근본 원인 규명이 아니라 전교조 탈퇴확인란에 내 손으로 찍은 도장 빛깔이 아니라 미국이나 통일문제가 아니라 일간신문과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유경이가 색종이를 너무 헤프게 쓸 때, 옛날에는 종이가 얼마나 귀했던 줄 너 모르지? 이 한 마디에 그만 샐쭉해져서 방문을 꽝 걸어 잠그고는 홀짝거리는데 그때 그만 기가 차서 나는 열을 받고 민석이란 놈이 후레쉬맨 비디오에 홀딱 빠져 있을 때,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유치원 가야지 달래도 보고 으름장도 놓아 보지만 아 글쎄, 이놈이 두 눈만 껌뻑이며..

[안도현] 연탄 한 장

연탄 한 장 안 도 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누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中에서 이 시는 가..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집 '높고 쓸쓸한' 중 전문 정말로 유명한 한구절 짧지만 강렬한 한 구절의 시 안 그래도 세상을 살면서 부끄러운일이 많은데 이 시를 보면 연탄재에게도 부끄럽다. 이 시의 구절처럼 정말 나는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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